August 16, 2020

“장래의 영광” (The glory of our future)

Preacher:
Series:
Passage: 로마서 (Romans) 8:16~18
Service Type:

“장래의 영광”

(The Glory of our future lives)

8-16-20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8:16~18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 – 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설교 요약]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계획’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라는 이름의 뜻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할 자”)을 통하여 주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의 의미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에 계획을 이해해 가기 원합니다. 먼저, 지난 주에 살펴본 데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God with us)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일까요?” (What is the meaning of ‘God with us’?)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에 의해 누리는 안식’ (It means our rest by Christ) 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8~29)고 말씀했습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생의 무거운 짐 가운데 고통받고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고,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맺히는 열매’ (It means the fruit in Christ)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 나아와서 그분께 배운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 (요. 15: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노력하고 투쟁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그분 안에서 맺어가는 열매인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한 충만한 삶’ (It means the fulfilled life through the Holy Spirit)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4)고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약속하신 영’ (겔.11:19, 렘.31:33)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예루살렘과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며 충만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갈.5:22~23).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그의 피로 씻어 줌으로 영생을 주실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성령을 통하여 풍성한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열매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과 함께 하늘에 속한 모든 유업을 누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택한 자녀를 구원하신 놀라운 역사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허락하신 구원을 날마다 이루어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계획’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도 전에, 아니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의 택하신 자녀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아담이 범죄할 것도 아셨다는 것인데, 그것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그들이 죽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태어날 모든 후손도 멸하심으로 인류를 끝내시고자 한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범한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반드시 죽지만, 하나님은 그의 후손에게 있어서는 그의 긍휼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창세 전에 이미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계획은 그동안 2주에 걸쳐 살펴본 데로 하나님은 그 아담의 죄에 대해 못 본 척 넘어가거나 그 죄에 대한 분명한 댓가지불 없이 그 죄를 없던 것으로 덮어준다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하시고 긍휼하심으로 인해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을 구원할 은혜로운 계획을 창세전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방법은 생각하면 할수록 경이롭고 완벽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은 언제 완전히 이루어졌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 (The Lamb of God)되셔서 그의 살을 찢으시고 그의 피를 남김없이 솟으심으로 ‘화목제물’ (propitiation)되어 죽으셨을 때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이 놀라운 구원의 계획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통해 남김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의 모든 저자들에게서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독생하신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만세 전에 자신을 통하여 예정하신 구원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대속 죽음으로 온전히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 즉 구원을 얻는다’ (요.3:16)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는 비록 그들이 자란 성장 배경과 교육정도와 기질 (=성향/성품)에 따라서 다양한 서술방식과 문장형태를 펼쳐 보이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중심사상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요, 그 분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구원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제 성도 여러분과 함께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완전한 구원은 무엇인지?” 하는 것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저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에게 주신 이름 ‘임마누엘’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그 이루신 구원을 살펴보겠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God with us)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그분을 ‘임마누엘’이라 이름하신 하나님이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이루신 온전한 구원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질문하기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일까요?” (What is the meaning of ‘God with us’?)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에 의해 누리는 안식’ (It means our rest by Christ) 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보면, 우리 주님은 이렇게 감동적으로 세상 가운데서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향해 사랑의 초청을 하고 계심을 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8~29)고 말입니다. 사실 인생이 얼마나 호락 호락하지 않은지는 각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실로 ‘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표현되듯이 결코 간단하지 않는 삶인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구원받은 성도들까지도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없이 인생의 무거운 짐 가운데 힘들어 하고 심히 낙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대상,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우리가 잘 아는 데로 구원받지 못한 자인 것입니다.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배우고 건강하다 하더라도, 이들을 장악하고 있는 ‘죄와 죽음’의 힘으로 인해 억눌려 있기에 인생은 무겁고 고통스러울수 밖에 없고 결코 편히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성도들도 같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하면, 방금 말씀에서 보듯이 주님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안식을 약속하셨는데도 우리는 그 안식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주님이 약속을 안 지키시든지, 아니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두말할 나위없이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첫째,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요, 둘째 ‘그분께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을 통해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온전한 구원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되신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온전히 담당하여 죽으시고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분이 우리가 아는 전부가 아닙니다. 아니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생명으로 모든 성도들은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분께로 나아가서 그분께 배움으로 구원의 선물인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진정 이 안식을 누리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주께서 초청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나아가며, 어떻게 주님께 배울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맺히는 열매’ (It means the fruit in Christ) 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고. 주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명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이제 몇시간 후면 12제자 중 한명인 가룟 유다로부터 팔려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제자들이 ‘주님 안에 거한다’ (abiding in Jesus)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육체적인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으로 믿음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고통하는 자들을 향해 초청의 메시지를 선포하심을 바로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불신자 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고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분께 나아오지 않고, 배우지 않는 제자들을 향해서 도전하시는 초청의 말씀임을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서, 그분께 배움으로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 여러분도 구원받은 자녀로서 합당한 평화와 만족을 누리기 원한다면, 그 길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되고, 그리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게 되며, 우리는 진실로 주의 제자가 된다’ (요. 15:5,8)고 주님은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5장>을 찬찬히 읽어보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 (v.5)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 (v.7)는 뜻이요,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뜻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 (v.9~10)는 뜻이라고 주께서 친히 그 영적 의미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내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여 많은 열매를 맺고 주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오늘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셋째,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한 충만한 삶’ (It means the fulfilled life through the Holy Spirit) 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 두곳에서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로마서 8장>인데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라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속에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강하게 질책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2가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가?’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왜냐하면 방금 <롬. 8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만약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없다면 나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교회 나오는데도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면 이것만큼 심각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사도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함께 거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두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심을 인식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2가지 질문의 [차이점]은 첫째 질문이 ‘나는 구원받았는가?!’를 도전한다면, 두번째 질문은 ‘만약 구원받았다면, 나는 구원받은 자 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도전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두 질문의 [공통점]은 ‘성령님’에 대해 질문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특별히 사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도전한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는 아직까지 거듭나지 못한 자들도 있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 중에는 구원받은 자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 사도가 강하게 그들을 질책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는 강한 질문은 ‘너희들은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보시고 살아가는 자로서 합당하지 못하게 사느냐!’고 질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고린도 성도들은 구원받았음에도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성적 타락을 행함으로 성령을 근심케 하고, 성령의 은사 (방언, 신유, 예언등…)에만 집착하여 진정으로 사모해야 할 성령의 열매를 이해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그분의 말씀 안에, 그분의 사랑안에 거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영, ‘성령’을 통해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깨닫을 때, 성령님을 더욱 인격적으로 알아 나가고 신뢰하며 그분께 순종함으로서 가능함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누리게 되는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놀라운 구원의 완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죄 용서함’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안에서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고. 성도 여러분은 날마다 주님의 영, 성령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경험합니까?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께 배우고자 힘쓰고, 그분의 말씀 안에 그분의 사랑안에 거하고자 인격적으로 결단함으로 성령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평화와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으십니까? 바라기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구원을 완성해 나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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