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3, 2020

“청년이 무엇으로” (How can a youngman?)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119:9~11
Service Type:

“청년이 무엇으로”

(How can a youngman?)

8-23-20

설교분문: 시편 (Psalms) 119:9~11

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By living according to your word.)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I seek you with all my heart; do not let me stray from your commands.)

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

[설교 요약]

오늘 본문의 <시편 119편>은 다윗이 지은 시라고 전해지는데, 정확히 그가 언제 지은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하나님께로 부터 ‘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함 받았던 다윗의 순결한 믿음의 삶을 가져온 기초는 하나님께 신실했던 그의 청년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다윗은 어떻게 유혹받기 쉬운 청년의 때에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영적 원리에 대해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청년이 그 행실을 깨끗케 하는 길일까요?”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By according to God’s word) 입니다: 첫 인간부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범죄함으로 죄와 죽음을 길을 택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 하시리라” (잠. 3:5~6)고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그 길을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둘째, ‘전심으로 주를 찾음으로’ (By seeking Him with all my heart) 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나의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날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마. 22:37) 하는 것임을 주님은 밝혀 주셨던 것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 함 같이 전심으로 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42:1)

셋째, ‘말씀을 내 마음에 깊이 간직함으로’ (By hiding His word in my heart)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잘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물론 주님의 말씀을 잘 간직하기 위하여 내가 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지켜 주시길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10절>에서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v. 10)라고 마음을 지켜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기를 구하는 이유입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전심으로 주님을 찾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마음판에 말씀을 새겨둠으로 범죄치 않고 성령의 풍성한 열매 거두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본문의 <시편 119편>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긴 장으로 유명합니다. 그 전체 구절이 무려 ‘176절’인데, 이 <시편 119편>은 일명 ‘말씀 장’ (= 토라시)로 불리어 지기로 합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지은 시라고 전해지는데, 정확히 그가 언제 지은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오늘 본문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하나님께로 부터 ‘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함 받았던 다윗의 순결하고 열매 맺는 믿음의 삶을 가져온 기초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으로 충만했던 그의 청년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임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성도 모두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으로 인하여 죄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 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여러분의 친구와 가족과 이웃을 주께로 인도하는 복된 삶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최근에 미국에서 유학하는 한국학생에 대한 사역현황 자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한 <대학선교단체>의 책임자로 있는 분이 2000년대 초기에 몇년간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10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한국유학생을 사역하는 한인교회의 유학생 사역현황을 구체적으로 설문과 통계자료를 근거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주목할 만한 자료였습니다. 물론 이 자료가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미국 동남부의 아틀란타와의 지역적인 차이라든가, 시간적으로 다소 해가 지난 자료라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참고할 의미있는 내용임을 저는 여러가지로 발견했습니다. 먼저, 선교학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사역하는 한인 교회들이 많지만 그 사역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선교는 선교학자 ‘Ralph Winter’ 에 의해 크게 HM (home mission/국내선교)와 FM (foreign mission/해외선교)로 분류되는데, 우리가 사는 아틀란타 지역의 교회라 하더라도 미국인이 미국인을 사역하는 교회 (HM1)가 있는가 하면, 미국인이 문화가 다른 민족을 사역하는 교회 (HM2~3)도 있고 (소위 인터내셔널 사역하는 교회), 우리 교회와 같이 미국에 사는 외국인에 해당하는 한인들이 같은 한국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 (FM1)도 있고, 더 나아가서 한인들이 문화가 다른 중국학생을 사역하는 것과 같은 교회 (FM2~3)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포슬교회’는 미국에서 사역하는 여러 형태의 교회 중에서도, [외국인 (=한국인) 교회]로서 [한국인 사역자와 교회 멤버들이 같은 문화와 언어권의 사람들을 사역하는 교회] (FM1)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유학생사역 교회의 상황에서 볼 때, 이 자료를 통해서 지역이나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되는 몇 가지 특징들, 즉 <장점과 단점>을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장점]으로는 한국에 비해 불신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더 열려 있다는 점, 영적으로 정서적인 필요로 인해 지역교회가 한인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점, 대부분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소도시에 위치해 있어서 소그룹모임이나 캠퍼스 모임이 용이하다는 점, 대학문화라는 동질성, 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고 교제하고 예배하며 파송하는 사역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 학생들은 말씀에 대한 이해와 학습능력이 빠르고 양육과 훈련도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가 ‘소그룹’ (성경공부, 캠퍼스모임 및 셀모임) 중심의 모임을 통해 기동성과 융통성이 좋고, 말씀훈련이나 제자양육이 효과적이고 인격적인 나눔과 상호 보살핌을 잘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점]으로는 대부분의 교회가 유학생을 위한 리더들과 평신도 사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사역자가 청년사역의 경험이 없음으로 유학생사역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목회자의 목회철학이 학생사역과 맞지 않는다는 점, 재정의 부족, 학생들은 잠시 있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부정적 인식, 지역교회들이 학생사역을 위해 함께 협력하고 연대하기 보다는 서로 경쟁하고 ‘개교회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 단기간에 학생들을 신앙적으로 훈련하고 파송해야 한다는 시간적 한계성 등을 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 유학생사역 자료를 찬찬히 검토하고 묵상하면서, 많이 공감하고 함께 문제점을 가슴 아프게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유학생을 섬기는 한명의 사역자로서 제가 그동안 나름데로 사역에 부족하나마 힘써 달려왔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였지만, 솔직히 제가 얼마나 제대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더 이상 과거의 경험만이 아니라 어떻게 비젼 가운데 이 사역을 지혜롭게 준비하고 스스로를 훈련할 것인지에 대해선 별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의하면 저 뿐 아니라 ‘학생사역을 하는 많은 사역자들이 고립되어 있고, 다른 지역 유학생 사역자들과 별반 교류없이 자신의 목회철학과 방법을 고수하며 혼자서 고분 분투’한다는 대목을 읽을 때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제가 학생사역자로서 필요한 여러 훈련을 솔선해서 먼저 받고 다른 학생사역자 와도 활발하게 교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지난날의 10여년의 사역을 바탕으로 심기일전하여 성도들과 함께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앞으로 전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저의 모든 부족과 연약을 아시면서도 주께서 저를 청년을 섬기는 사역자로 세우셨다면, 저의 열심과 헌신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양들을 먹이고 길러내는 일에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실 것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 가운데 오늘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다윗은 어떻게 유혹받기 쉬운 청년의 때에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영적 원리에 대해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청년이 그 행실을 깨끗케 하는 길일까요?”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By according to God’s word) 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형식’을 통하여 어떻게 청년이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 무엇보다도 청년이 깨끗하고 순결한 삶을 살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가능하다고 그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의 성경에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v.9b) 라고 번역되어 있고,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에는 “다만 주의 말씀에 따라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성경은 청년 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죄를 이기고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한결같이 선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 하시리라” (잠. 3:5~6).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완전했던 첫 인간부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범죄함으로 죄와 죽음을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창조하신 인간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교만하여 짐으로 사탄의 유혹을 받고 죄를 범했다면, 아담의 원죄를 물려 받은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영적 진실을 애써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는 결코 죄에서 떠나 깨끗한 삶을 살수 없음을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주의 말씀을 따라 살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선하고 능력 있음을 부정할 크리스챤은 없겠지만, 그 말씀을 따라 실제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많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의 말씀을 따라 실제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둘째, ‘전심으로 주를 찾음으로’ (By seeking Him with all my heart) 입니다: 다윗은 우리 크리스챤이 어떻게 말로 만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따라 실제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에 대한 한가지 중요한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것은 ‘전심으로 주를 찾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v.10) 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이해할 수 있는 한가지 영적 진리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나의 믿음이 이제부터 자동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라고 성경은 결코 약속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나의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날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마. 22:37) 하는 것임을 주님은 밝혀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 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시. 42:1) 라고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간절함을 감동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성도 여러분에게 도전하기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간절히 찾도록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이것이 주의 선하심과 은혜를 받는 그분의 모든 자녀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삶의 자세임을 이해하십니까?

셋째, ‘말씀을 내 마음에 깊이 간직함으로’ (By hiding His word in my heart) 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청년이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해 가면서 그 마지막으로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깊이 간직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서 감동하며 또한 감사하는 것 한가지는 그의 고백은 하나의 이론적이고 신학적인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삶의 경험을 통해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청년시기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경험을 언급하면서 그것은 ‘주의 말씀을 자신의 마음 깊이 간직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결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문말씀 <11절>의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잘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생명과 승리의 근원되신 주님의 말씀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질문인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을 잘 간직하기 위하여 내가 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서 깨닫은 것을 삶 속에서 적용해 나가고자 하는 순종함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전부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삶속에서 적용해 나가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누가 통제하고 다스려 나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성도가 진실하고 겸손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비록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찌라도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고 잠언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10절>에서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v. 10a)라고 자신의 분명한 의지와 행위를 밝히고 난 다음, 곧바로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v. 10b) 라고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요? 이것은 ‘제가 주의 말씀을 따라 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자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찾고자 노력하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고자 힘쓸지라도 제 마음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할찌라도 주께서 여러분과 저의 마음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원하는 선을 행할 수 없고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여러분과 저의 마음을 강권하여 지키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주의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할 수 있고, 그분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두번 다시 오지 않는 현재의 소중한 이 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혹을 이겨내고 순결하게 지켜 나가는 아름다운 삶 사시길 기대합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찾고 주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 깊이 간직함으로서 성령을 통하여 죄를 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풍성한 열매 맺는 삶 사시길 소망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빛된 삶을 보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못해 방황하고 고통받는 여러분의 친구를, 가족을, 그리고 이웃을 주께로 인도함으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축복된 인생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