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6, 2021

“중독 증상” (Symptoms of Addiction)

Preacher:
Passage: 요한복음 (John) 8:35~36

“중독 증상”

(Symptoms of Addiction)

9-26-21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8:35~36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Now a slave has no permanent place in the family, but a son belongs to it forever.)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So if the Son sets you free, you will be free indeed.)

[설교 요약]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도 시간사용은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는가는 내가 나 자신을 얼마만큼 잘 다스려 나가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을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분을 얽어매고 컨트롤하는 그 무엇은 없습니까?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v.36)라고.

<중독증상>(symptoms of addiction)이란 일반적으로 마약이나 술, 담배 등에 중독이 되어 그것 없이는 견딜수 없는 병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중독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박중독, 게임중독, 운동중독, 셀카중독, 쇼핑중독, 심지어 일중독까지 매우 다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부분 중독증상과 같은 문제의식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소셜 네트웍’입니다. 소위 ‘페이스북’ ‘카톡’ ‘트윗터’ ‘인스타그램’과 같은 인터넷 대화방이며, 더 나아가 ‘유튜브’ ‘구글’ ‘야후’와 같은 인터넷시스템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이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와 같은 ‘소셜네트웍’이나 그 어떤 것에 시간을 사용하느냐는 것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지혜롭게 통제할 수 있느냐가 핵심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중독적인 습관이나 일을 스스로 잘 통제하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시는 자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죄의 종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4~36)는 것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자유는 그 무엇보다도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예수믿고 구원받는 영적 신분의 변화입니다.

둘째), ‘진리를 깨닫음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는 믿는다고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v.31~32). 신분만 제자가 아니라, 참된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거함으로 참된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셋째,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는 무엇일까요? 그 무엇보다도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갈. 5:13)하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는 것이 주께서 주신 참된 자유함에 이르는 놀라운 진리임을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아들의 충만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우리를 얽매고 사로잡는 헛된 것들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지난 한주동안 성도 여러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지난 일주일간 여러분이 가졌던 일 중에서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하고 별 것 아니라 할찌라도 실제 여러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일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제가 추측건대, 여러분 중 적지 않은 분들이 각자의 시간 사용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을 균형있게 잘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도 이 시간사용은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는가는 내가 나 자신을 얼마만큼 잘 다스려 나가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여러분을 얽어매고 컨트롤하는 그 무엇은 없습니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특별히 청년들이 겪는 ‘중독증상’은 무엇인지를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통해 묵상해 보며, 우리 주 예수께서 약속하신 진정한 자유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를 실제적으로 얽매고 속박하는 것들로 부터 진정으로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중독증상>이라고 잡아서 여러분 중에서 오늘 설교 메시지가 굉장히 심각한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중독증상이라고 했을 때 ‘마약중독’과 같은 그야말로 심각한 중독증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술이나 담배중독에서, 도박중독이나 음란물 중독과 같은 것도 심각한 중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통계는 알수 없지만 마리화나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마약들이 과거에 비해서 젊은이들 사이에 더 가까이 퍼져 나가고 있음을 여러분들도 잘 알 것입니다. 술, 담배에 대한 중독증상도 생각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흔히 ‘중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습관처럼 반복하는 가운데 중독증상이 되어 우리의 삶 중심에 깊이 고착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를 테면 ‘소셜미디어’라고 불리우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일 것입니다. 페이스북, 카톡, 트윗터, 인스타그램 등 수 없이 많은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재 성도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많은 소셜미디어에 연결되어 있으며, 하루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전부가 아닙니다. 유튜브에서 관심있는 동영상물을 이것 저것 돌려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구글’이나 ‘야후’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번학기 코스웤이나 학위논문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중요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것은 특별히 우리 청년에게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소셜미디어 관련 사이트 사용만 하더라도 매우 놀라운 정도로 우리의 삶 깊이 파고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관련한 자료를 확인하던 중 저는 흥미 있는 자료를 찾았는데, 그것은 ‘Social Media and Digital Discernment’ (소셜 미디아와 디지털문화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존 맥아더’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은 “<2010년>에 쓴 글로서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기고된 글입니다. 제가 이글을 흥미롭다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쓰여질 당시만 하더라도 ‘소셜미디어’가 현재 상황에서 비교해본다면 아직 미약한 수준이었음에도, 그 당시 이미 오늘날과 같은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점을 맥아더목사는 날카롭게 예측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해 보고자 합니다. “한편에서 본다면, 소셜네트윜 사이트는 여러가지 유익함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나 자신이 관련된 사역들 (‘Grace to you’, ‘The Master’s College & Seminary’)에 필요한 관련자료를 제공하고 사역의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하는데 이런 소셜 네트워킹을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셜 네트워킹은 올바른 목적을 위해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스도를 영예롭게 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지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 네트워킹은 또한 남용(=악용) 되어 질수 있다. 이런 네트워킹이 단지 즉흥적인 왁자지껄한 대화나 개인의 독백 수준을 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통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도취에 빠진 수단이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네트워킹은 우리의 삶을 소모시키게 될 때, 이것은 중독적이 되고 우리를 컨트롤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네트워킹을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했을 때, 이것은 잠재적 위험성(=함정)과 유혹들로써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분의 제자들로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주되심에 순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각자가 ‘어떻게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때가 된것 같다.” 맥아더 목사는 네트워킹의 여러 다양한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이 점점 더 활성화 되어가는 네트워킹에 컨트롤되고 중독되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예언자적으로 경고하고 영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함을 이글을 통해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맥아더목사는 <Nielson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이미 그 당시 (2010년) 미국인의 소셜미디아 사용이 한달에 총 9억시간을 사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트위터’ 사용자는 1억명가량이고, ‘유튜브’의 경우는 하루 평균 2억이 넘는 동영상들이 틀어지고 있으며, ‘페이스 북’의 경우는 5억명의 이용자들이 매달 7천억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략 한사람당 한달에 24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고, 사람들은 이와 같이 메시지를 확신하고 프로파일 사진을 업데이터하고 수정하는 작업등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알 수입니다.

사실 제가 학생청년들에게 있어서 비교적 가장 영향력 있다고 여겨지는 소셜워크에 대해서 현대인들의 과다한 시간사용, 즉 중독증상에 가까운 현상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런 중독증상은 그밖에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그 사람의 성격, 기질, 취미, 삶의 방식에 따라 무척 다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일중독’ ‘공부중독’까지 있는 것입니다.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일이나 공부에 지나치게 고착되어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견딜수 없어서 어쩔수 없이 병적으로 매어 달린다면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통해 문제 제기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삶의 모습 가운데서 얽매이고 구속받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아들을 통하여 참된 자유함을 주시겠다는 우리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자신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의 종되었던 우리를 값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집에 자신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하실 뿐 아니라, 참된 자유를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약속하시는 자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죄의 종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주님은 선언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v.34)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든 인간에게 선언하시는 영적 진리는 그 어떤 인간도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이 죄라는 폭군의 힘에서 스스로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우리가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오늘 본문에서 선언하듯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v.36)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께서 선언하신 자유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는 자유’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 받고 죽었던 영적 생명이 살아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본질적으로 주께서 선언하시는 ‘아들이 주는 자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 출생을 시작하지 않고는 그 어떤 은혜와 자유의 삶도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다음은

둘째), ‘진리를 깨닫음의 자유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요한복음 8장>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유대인들’ (v.31)에게 자유함에 대한 첫번째 약속의 말씀은 <요. 8:31~32>임을 알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v.31~32). 여기서 주님이 약속하시는 자유는 어떤 자유일까요? 그것은 진리를 깨닫게 됨을 통한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는 어떻게 깨닫게 될까요? 그것은 먼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이 제자의 삶은 진리로 우리를 인도할 것임을 주님은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자유에 이르는 하나의 중요한 단계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제자들이 먼저 ‘그의 말씀에 거’하고 이를 통해 ‘그분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게’되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나을 믿기만 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주님이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될때, 깨닫게 된 진리를 통해 자유케 된다고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깨닫게 되는 진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자유’의 의미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셋째,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입니다. 다메섹 언덕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로 그 누구보다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자유함’의 주제와 연결되는 한가지 중요한 영적 원리를 설명합니다. 그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서 더 이상 과거의 초등학문과 같은 ‘율법의 종’으로 되돌아 가서는 안되고,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자의 삶’을 살라고 도전하고 격려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크리스챤들은 그리스도의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갈. 5:13)는 것입니다. 성도의 진정한 자유는 육체적 방종과 탐욕에 이끄는 데로 마음데로 사는 삶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자유인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고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이유입니다. 사랑으로서 서로의 짐을 짐으로 진정한 자유자가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자유입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알았다 할찌라도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자유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제자만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그의 사랑을 깨닫고 소유한 자만이 누릴수 있는 자유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가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얽매이고 속박되는 중독증상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먼저 우리는 그런 중독증상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것이 마약이나 도박, 음란물과 같은 심각한 중독 뿐 아니라 술, 담배, 그리고 여러가지 취미와 생활 습성과 많은 사람들이 일상처럼 행하는 소셜네트워킹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중독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드리는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우리는 이런 중독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거함으로써, 그 말씀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으로 ‘내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의 연약함으로 원치 않는 헛된 것’에 사로 잡히지 않도록 죄와 싸워 승리함으로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알게 모르게 얽매고 있는 그 중독현상을 깨닫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얽매고 있는 그것들로 부터 자유하기를 소원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v.35)라고. 아들만이 주실 수 있는 자유, 아들만이 그의 진리를 통해 깨닫게 해 주시는 자유를 누려 나가길 진정으로 소망하십니까? 그것은 오직 진리의 영,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16) 이와 같은 지혜의 충만한 삶, 그 지혜로 말미암아 세월을 아끼는 삶이 성령충만한 삶임을 믿습니다. 이런 아들의 충만한 영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우리를 얽매고 사로잡는 헛된 것들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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