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4, 2021

“하나님의 마음” (The Mind of God)

Preacher:
Passage: 예레미야 (Jeremiah) 32:40~41
Service Type:

“하나님의 마음”

(The Mind of God)

3-14-21

본문말씀: 예레미야 (Jeremiah) 32:40~41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I will mak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them: I will never stop doing good to them, and I will inspire them to fear me, so that they will never turn away from me.)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I will rejoice in doing them good and 그들의will assuredly plant them in this land with all my heart and soul.)

[설교 요약]

          오늘 본문말씀을 포함한 <예레미야 32장>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 유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과 새언약을 맺어 그들을 떠나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신실한 마음으로 자신을 경외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회복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원대한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체결되었고 (마. 26:27~28),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에 불의 혀같이 임하신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언약의 권세와 은혜를 우리는 구체적으로 누려 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려 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How are we able to enjoy with the promised grace of God?) 그것은,

첫째,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번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고, 악한 자가 건드릴 수도 없음을 영으로 확신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구원을 확신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으로 자라나가는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결코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책망한 것과 같은 ‘주께 징계받는 철없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0). 그리고 이런 성숙의 삶은 지속적인 영적 훈련을 통해 가능합니다.

셋째, ‘성령 충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1,34)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래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하신 부어 주심을 통하여 여러분과 저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법을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충만을 통해 주께서 약속하신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주님은 우리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그분의 뜻은 무엇이며, 하나님은 그 선하신 뜻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솔직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 뜻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인들 우리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창조주의 뜻과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주심에 대한 자신의 뜻을 숨기지 않으시고 놀랍게 밝혀 보여주고 계십니다. 어디에요? 바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신 계획하심이 고스란히 기록된 것 <신.구약성경>책에 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하나님은 그의 택한 자녀들을 복주시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고 그들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두어 자신을 떠나지 않게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의 택하신 자녀에게 숨김없이 밝혀 보여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아 나가고, 깨닫은 만큼 그 분을 향한 사랑을 더욱 더 실천하는 성도 여러분의 복된 삶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예레미야 32장>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왕, 시드기야왕 제 13년에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의 군대에 의해 이미 예루살렘이 에워 쌓여 있었고, 그로 인해 유다가 완전히 멸망당 하기 1년 前의 시점이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100여년 전에 앗시라아에 의해 멸망당했고, 남유다 왕국 마저도 최강국 바벨론 제국에 의해 공격당하여, 그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심히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종을 보내셔서 심판과 함께 회복의 메세지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먼저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그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 (v.3)과 바벨론 군대에 의해 나라가 완전히 멸망될 것 (v.5)을 앞절에서 예언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통해 그 불순종하는 택한 백성의 죄를 나라가 망하게 하는 엄중한 심판으로 벌하실 것을 선포하셨지만, 놀라운 것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징계받은 자녀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 사랑으로 회복시키실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신.구약 성경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자녀를 얼마나 확실하고도 영구적으로 회복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할 것인가를 약속하신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로 저는 기억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v.40~41)라고. 복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언약을 세우고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두어 그분을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며, 그들에게 신실한 마음을 주셔서 그분을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곧 그 약속의 핵심이 되는 ‘성령충만의 약속’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오늘 본문의 한 장 앞인 <렘. 31장>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1,34)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울 것을 선언하시고, 자신의 법을 그들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망스런 언약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이 언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주께서 잡히시기 전날밤,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을 베푸시고 포도주 잔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너희는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7~28)고. 우리 주님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셔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남김없이 흘리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구속 (=구원/영생)의 언약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언약을 이루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뜻일까요? 그로 말미암아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자신의 거룩하신 법을 우리 속에 두고, 우리 마음에 기록케 하시는 은혜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신 후 몇 날이 못되어서 성취된 사건입니다.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라고 말씀하시고,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행. 1:4~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것과 같이 과연 몇 날이 못되어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불의 혀같이 임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신 사건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뿐 아니라 에스겔과 그리고 여러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통해 우리 마음에 그의 법을 새겨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진심으로 경외하고 사랑하게 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바로 <오순절>날, 주의 제자들에게 불의 혀같이 임하신 ‘성령강림’을 통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은 이 성령충만의 역사는 주께서 승천하시고 몇날이 못되어 오순절날 한번 일어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를 기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2000년 기독교회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큰 그림에서 살펴봤을 때 어떻게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그의 택한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성취된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은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신 약속과 우리의 실제적인 삶이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 쉬운 말로 한다면, ‘어떻게 우리는 즐거운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이 한 질문 (=문장)안에 어떻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예정하심의 은혜를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과 동시에 어떻게 나의 인격적인 결단을 통하여 그 은혜를 누릴 것인가? 가 더불어 포함된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려 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How are we able to enjoy with the promised grace of God?) 그것은,

첫째,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약속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원의 확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나사렛 예수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거듭나게 되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영적으로 매우 불확실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런 영적 상태에서 더 깊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은혜를 누려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태복음/Matthew 11:25~26)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진리를 세상의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셨지만,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믿음과 청결한 마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는 드러내 보여주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은 ‘성도 여러분은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까?’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가 들어왔던 수많은 대답 가운데 ‘요한 웨슬러’가 정의한 구원의 정의를 그 어떤 것보다도 성경적 가르침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웨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100% 하나님의 예정하심이요, 100% 인간의 자유의지이다”라고요.

그런데 인간의 구원관에 있어서 기독교 안에서 크게 2가지 이해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전적인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 우리 인간이 구원되는 것은 그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 하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알미니안 주의>가 있고, 둘째는 반대로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함으로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예정하심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칼빈주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구원의 확신을 먼저 가져야 함을 말하면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 같은 결코 쉽지 않은 구원에 관련한 신학사상을 언급하는 이유는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구원관이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는데 매우 유익하다고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웨슬러가 표현했듯이, 전적인 하나님의 예정 하심이요, 동시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을 자유의지를 통해 결단함으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두 주장은 모두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단지 문제는 우리 인간은 우리 머리로 논리적으로 이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신비를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이 성경에서 밝혔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과 은혜로 그의 자녀에게 베푸신 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성도가 이해해야 하는 또 한가지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포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선행하는 진리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써,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앞서는 우리 성도의 구원의 근거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5)라고. 여러분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셨습니까? 만약 아직까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아직까지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째로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지만 계속해서 믿음으로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결코 구원이 취소되지 않으며, 어떤 악한 자가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성경의 중요한 교리를 깨닫고 그 든든한 진리 위에서 믿음으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구원받으셨습니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을 확신합니까?

둘째, ‘영적 훈련을 통해서’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확신’한다면, 이 믿음의 확신이 여러분을 어떻게 인도하고 있습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 믿음의 확신은 더 깊은 영적 성숙으로 인도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가지 적지 않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들이 가진 잘못된 구원관을 저의 노파심에서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라고 불리는 ‘한번 받은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는 구원의 중요한 교리를 근거로 해서 잘못된 적용을 하는 성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크리스챤 청년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경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래 나는 이미 구원 받았어! 그러니, 나는 어떻게 살아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아! 그렇다면, 세상에서 즐길 것 좀 즐기고 내 마음데로 하고 싶은 것 하다가 죽기 얼마전 쯤 회개하고 돌아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생각은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구원받은 성도로써의 모습’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요, 성경에서 경고하는 매우 위험한 신앙관임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올해를 시작하면서 제가 ‘징계받는 자’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면서 사도 바울이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11:30)라고 언급한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구원받았음에도 약하게 된 자와 병든 자와 잠자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가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시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구원받았음에도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할 때,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곧 세상과 함께 멸망되지 않게 하고자 주께서 징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인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히.12:6)고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의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영적 훈련’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신분을 향해 자라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과 저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더욱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성도 여러분은 영적 훈련을 통해 자라남으로 여러분을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풍성하게 알아 나가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 충만을 통해서’입니다: 왜 오늘 말씀이 하나님의 심히 놀라운 약속의 은혜일까요? 그것은 그 은혜가 무엇보다도 여러분과 저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40a) 선언하시고, 또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v.40b~41)고 오늘 말씀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의 그 어떤 행위도 전제하지 않는 하나님의 그의 자녀를 향한 선하심과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이해해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그분의 은혜를 누리게 된 자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을 떠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하여 이 은혜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앞서 잠시 살펴본 데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1,34)고. 하나님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래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하신 부어 주심을 날마다 행하셔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심으로 그의 선하신 율법을 돌판이나 나무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판에 기록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음은 원할찌라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결코 행치 못했던 하나님의 선한 율법을 행하는 특권과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령충만을 누리고 있습니까? 이 충만은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성숙 가운데 무엇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거룩한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성령충만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령을 신뢰하고 사모합니까? 그분께 순종해가고 있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성령의 충만을 누립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까? 우리 주께서 약속하신 우리의 무거운 삶의 짐을 벗어 버리고 그분의 가벼운 짐을 지고 그분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주의 영,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성령충만의 은혜를 누립니까?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언약이요,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그분을 경외하고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뜻임을 믿습니다. 이런 약속하신 성령의 모든 충만한 열매를 날마다 누려 나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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