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6, 2017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God so loved)

Preacher:
Passage: 요한복음 (John) 3:16
Service Type: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For God so loved)

11-26-17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론>

어떤 신학자는 성경을 줄이고 줄여서 한문장으로만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3:16> 말씀이 되어야 할것 이다고 말한 것을 저는 기억 합니다. 왜냐하면, 이 한 문장의 말씀은 성경 그 어느 곳에서 보다도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마음이 어떠한지와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으며, 그리고 구원 받게 된 상태는 어떠 한지를 이처럼 분명하고도 아름답게 밝히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을 깨닫고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의 소망을 얻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된 신분을 누려나가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론>

오늘 이 유명하고도 은혜로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나쳐서는 않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3장 1~15> 의 말씀인데, 오늘 본문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에 가만히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영생 (=구원)에 대해 설명하신 부분’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비록 유대인의 선생으로서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유대인들을 평생동안 영적으로 지도했던 니고데모였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 (eternal life) 이라는 의미를, ‘거듭남’ (born again) 이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인간적으로만 그것을 이해 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스스로 믿는 니고데모에게 진정한 구원은 무엇인지?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를 오늘 본문 바로 앞 <14 & 15절> 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림으로즉 인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십자가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구원이 가능하게 될것 (14) 임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된다)’ (15) 고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3장16절’ 이 이어지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처럼 사랑’ 하셨다는 것은 어느만큼 이라는 뜻 입니까? 사도요한은 ‘말로 다할수 없을만큼 크고 깊게’ 라는 의미로 ‘이처럼’ 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확히 얼마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는지의 ‘정도’ (degree) 를 설명하여 주는 것이 이것 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시키실 만큼’ 우리를 사랑 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의 한계가 있음을 저는 절감 합니다. 저의 표현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해의 한계가 있습니다. 머리로는 막연히 짐작하지만,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의 언저리 조차도 닿지 못하는 우리의 영적 무감각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내가 비록 하나님의 그 깊고 크신 사랑을 다 이해하지는 못할찌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내 죄를 갚아 주시고, 그 아들과 함께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심을 마음을 열어 믿을때 영생을 허락 하신다는 것 입니다.

17세기의 스콧틀란드의 청교도신학자였던 ‘헨리스코우글’ (Henry Scougal)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인간 영혼속에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이라는 유명한 책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이 책 제목은 그 이후 ‘무엇이 과연 진정한 기독교인가?’라고 질문할때 가장 짧으면서도 그 본질을 잘 표현할 정의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바로 <인간 영혼속에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이 <참된 기독교> 라는 것 입니다. 만약, ‘인간 영혼 속에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생명> 이 기독교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인간의 영혼속에 흘러 넘치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이 내 삶 가운데 흘러 넘치게 되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요. 3:16> 이 될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땅에 보내신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믿게 될때 멸망치 않는다는 입니다.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 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어 속에서 흘러 넘치는 생수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7:38). 이것이 예수님께서 니그데모에게 말씀하신 구원과 영생을 얻는 핵심인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를 믿는 것 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그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내가 지식적으로 예수를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나사렛 예수가 존재했음을 단순히 인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내 삶을 그분께 완전히 맡긴다’ 는 뜻 입니다. 더 이상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는 뜻 입니다. 말로만 하는 ‘주님’ (Lord) 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되심을 깨닫음아서 실제로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 가는 것’ 입니다. 저는 지금 여기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동일한 질문을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신앙의 배경을 가지고 있던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가지를 질문하기 원합니다. 저는 이 질문이 어쩌면 여러분의 평생의 삶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수도 있는 질문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정직하게 대답하실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다시말하면, 예수님이 당신의 삶의 주인이십니까?’ 저는 지금 여러분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았나?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나? 얼마나 실수하지 않고 완벽한 삶을 살았느냐?고 결코 질문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냐?” 고 묻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 입니다.

그리고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라고 주님은 선언 하십니다. 여기서 주께서 언급하신 ‘멸망하다’ (perish) 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심판이요, 영원한 벌’ 임을 성경에서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주께서 말씀하신 멸망 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 인간의 영적 상태 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멸망’ 은 먼 훗날 죽어서, 혹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행하시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만 ‘멸망’ 된다고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 영생이 미래의 어느때가 아니라 바로 현재에 이미 누리게 됨과 동시에 주를 믿지 않게 될때 지금 멸망케 된다고 선언 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지 않음으로서 그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되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과 단절된 멸망의 상태에 놓여져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주께서 ‘저를 믿지 않는자가 멸망된다’ 고 말씀하신 뜻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v.18) 고. 주님은 영생과 심판을 미래 언젠가에 받게 되는 상태로 말씀하시지 않고, 현재완료적으로 표현 하십니다. 이 말씀은 ‘현재 내가 예수님을 믿느냐가 바로 영생을 그리고 심판을 결정한다는 것’ 입니다. 이점은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17:3) 라고 하신 주님의 기도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믿음을 묻으십니다. 내년이 아닙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몇시간 후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불신 입니다. 이것은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론>

저는 오늘 여러분 중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처음 들었든지 혹은 평생을 통해 들어 왔던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그러하셨던 처럼 말 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셔서 대신 내 죄 값을 갚아 주심을 여기 참석한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서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기를 ’ 간절히 소원 합니다. 한달후가 아니라,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실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는 뜻 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은혜로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권세를 누리시길 축원 합니다. 그리고, 이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깨닫을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삶이 날마다 성령의 이끄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진정한 복을 누리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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