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9, 2022

“허물과 죄로 죽었던” (Being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2:1~2
Service Type:

“허물과 죄로 죽었던”

(Being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1-9-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2:1~2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As for you,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2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설교 요약]

            오늘부터 시작되는 <에베소 2장>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v.1)라고. 그러면 누가 우리를 살렸습니까? ‘허물과 죄 가운데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사도는 죄로 인하여 ‘죽을’ (미래)라고 말하지 않고 ‘죽은’ (과거)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죽었던 너희’ (you who were dead)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바로 ‘영적 죽음’ (spiritual death)을 뜻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는 히브리 원어 (하타)의 의미에서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벗어나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웨스트민스터 성구사전)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 죽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거부하며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입니다.

이제 사도는 엡. 2장을 시작하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갈라져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하나로 연결하실 수 있었는지?’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서 갈라져 있던 이 둘을 그의 몸으로 하나로 통일시키신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먼저 모든 인간의 실존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뿐 아니라 유대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너희” (v.1)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 죄의 열매는 “그때에 ~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v.2)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게 함으로, 죄의 원흉인 공중 권세잡은 자 사단 마귀의 종이 되어 불순종의 자식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가 오늘 말씀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영적 죽음에서 살리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성도 여러분 모두를 올 한해동안 넉넉히 승리하게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제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가지 분명하게 확신하게 되는 삶의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삶의 만족과 기쁨은 결코 외적조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지나, 얼마나 가졌는지나, 얼마나 배웠는지나 혹은 얼마나 명예나 권력을 쥐었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의 만족과 기쁨을 결정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와 같은 것들이 전혀 관계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깨닫음>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종교에서 중심주제로 삼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믿음을 통한 영적 깨닫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는 창조주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참된 종교임을 우리는 확신하기에 이런 내면적인 ‘영적 각성’은 크리스챤의 중요한 영적 성숙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v.1)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살렸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셔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여러분과 저를 살리신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 <이사야 60장>을 통해 ‘빛을 발하라’는 제목으로 신년 첫 주일 메시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때 제가 강조했던 한가지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저는 우리가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깨닫기 위해선 먼저 어둠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경험하기 위해선 하나님 없는 삶이 얼마나 절망과 허무로 가득 찼는지를 체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강조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지닌 주에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민족은 바벨론의 전쟁포로로 끌려가서 소망없이 하루 하루를 치욕적인 포로의 삶을 살아갔기에 머지않아 빛 되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들을 자유의 몸으로 가나안 땅에 다시 돌려보내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의 약속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소망된 것인지를 그들은 뼈저리게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실 때 우리에게 순종함을 요구하시지만, 이런 우리의 순종함 이전에 먼저 ‘왜 순종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밝혀 주신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아버지는 그 자녀들에게 ‘왜 우리는 영적 두발로 굳건하게 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왜 빛을 발해야 하는지?’를 본질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주 말씀의 핵심이었다면, 이 말씀과 오늘 본문과는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은 여러분과 제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가를 성령의 빛을 통해 사도가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의 전쟁포로가 되어 절망의 세월을 보냈듯이, 우리 모든 인간은 죄의 포로가 되어 어움에 속한 삶을 살았고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에베소 2장>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v.1)라고.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허물과 죄 가운데 우리를 살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권세에 속한 자’는 그 어둠을 깨닫지도 못할 뿐 아니라, 어둠의 권세에서 스스로 벗어날 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죄와 허물로 거의 죽을 뻔한 너희’라고 말하지 않고, ‘죽었던 너희’ (you who were dead)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미 죄로 말미암아 과거에 죽은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죽었던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우리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한명도 예외없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죽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라고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가 여러분과 저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영적으로 죽은 존재가 되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죄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에서 ‘죄’를 뜻하는 대표적인 것으로써 “하타”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쏜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듯’ 우리 인간의 무엇인가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본질적으로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그분에게서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죄는 곧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벗어나서 하나님과 분리되는 인간의 상태>라고 ‘웨스트민스터 성구사전>은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가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켰을 뿐 아니라, 영적 죽음의 상태로 놓이기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필연적으로 영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체적인 에베소서 말씀의 구조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사도 바울이 <1장>말씀을 통하여 에베소서 전체의 주제가 되는 말씀을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엡. 1:10>인데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v.10)는 말씀입니다. 사도는 이런 놀라운 주제를 선언할 뿐 아니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놀라운 기업을 받게 될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약속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온전히 알아 나감으로써 입니다. 이것이 1장의 전체 요약이라면, 이 1장의 목적은 ‘장엄한 보편적 진술’을 하는데 있습니다. 거기에 반해 2장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실제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는 <2장>에서 ‘어떻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실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모든 일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둘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제거하셨는가 가 이어지는 2장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 첫째의 장벽은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죽은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의 장벽은 하나님의 율법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주어졌고, 이방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서 <2장> 후반부, 11~ 22절, 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율법의 장벽을 극복하셨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의문에 속한 율법을 폐하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이루어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에베소서 1장에 이어서 2장을 연결지어 주는 핵심적인 요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 오르사 자신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1장>의 마지막 진술인데 <2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것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은 가장 헬라어 원문에 가깝게 번역된 것으로 인정되는 ‘흠정역’ 에서 “또한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And you have He quickened,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v.1)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1장과 2장을 연결하는 단어가 “또한 그분께서”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2장을 시작하면서 동일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어떻게 우리를 살려셨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는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어떻게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 이었던 모든 자들을 살리실 수 있으셨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구체화하면서,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 상당수 바로 이방인이었던 점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이방이었다는 사실에서 2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로 인하여 죽었다’는 것이요, 둘째는 ‘율법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먼저 ‘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인간의 실존’을 강하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v.2)고 사도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라고 진술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죄의 유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간의 삶의 목표가 되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목표에서 빗나감으로 죄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좀비와 같은 상태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이 세대를 본받아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로 모든 거짓의 아비요, 죄악의 뿌리인 사단 마귀를 좇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악한 영에 지배되고 따르는 삶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오늘 본문 다음 절인 <3절>에서 사도는 이렇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v.3)라고. 이것은 곧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우리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가 죄의 뿌리인 사단 마귀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하시고 책망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8~9)라고. 그럼으로 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 무엇을 하는 것이 죄이기 전에,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음이요, 원하는 선을 행치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사도 바울이 여러분과 저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까요? 1장에서 태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언하고 나서, 이제 2장에서 여러분과 제가 지금 누리게 된 이 구원의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봄으로써 말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과 저는 이해하느냐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던 당시, 세상풍조를 따라 악한 영 사단 마귀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능력의 사랑으로 자유케 하시고, 구원하신 은혜를 이해하느냐고 사도는 강하게 질문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의 가장 큰 신앙의 문제점의 하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심에 대한 감격이 없는 것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허물과 죄에서 씻어주시고, 영원한 새 생명 주심은 한번 ‘감사합니다!’하고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은혜는 묵상하면 할수록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받을수록 내 온 맘과 정성을 다해 그 놀라우신 사랑을 찬양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감격과 찬양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이것은 구원받았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을 더욱 더 즐거워하며 묵상하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심으로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사랑에 점점 더 눈을 뜨며, 성령의 빛되신 인도하심으로 구원받은 자녀의 진정한 특권과 유업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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