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4, 2023

“몸의 행실을 죽이기” (To Mortify The Deeds Of The Body)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8:13
Service Type:

“몸의 행실을 죽이기”

(To Mortify The Deeds Of The Body)

5-14-23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8:13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For if you live after the flesh, you shall die: but if you through the Spirit do mortify the deeds of the body, you shall live)

[설교 요약]

            로마서 중에서도 <롬. 8장>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크리스챤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탁월하고 영광스럽게 밝히는 말씀입니다. 바로 <롬. 8장>의 주제말씀인 <1-2절>에서 선언하듯이,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복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v.13)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크리스챤의 성화 (sanctification)”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앞 절, <9~12절>에서 사도는 우리 성도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질 수 있는지’ (v.9), 또한 어떻게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않을 수 있는지’ (v.10-12)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해서인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v.13)라는 뜻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뜻일까요?” (v.13) 그것은

            첫째) “성령으로만 <죄의 실체를 깨닫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 (고전. 3:3)라고 고발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크리스챤이 되었음에도 ‘육신에 속한 자’로 살아 갈수 있음에 대한 강한 경고입니다. 이런 불행한 크리스챤이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믿는 성도도 실수하고 죄를 범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요일.1:8-10), 성령으로 내 속에 있는 죄성 곧 ‘죄의 실체’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 51:3,7)

            둘째) “성령으로만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청교도의 대표적인 신학자 ‘존 오웬’은 그의 책 “죄 죽이기”에서 우리 크리스챤이 어떻게 실천적으로 죄와 싸워 이길수 있을 것인지를 탁월하게 제시합니다. 오웬은 그의 책에서 ‘죄를 죽인다’는 의미를

  • ‘죄의 성향을 약화시킨다’(약. 4:7)
  • ‘죄와 맞서 싸운다’ (엡. 6:12)
  • ‘죄를 죽이는데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빌. 3:13-14)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셋째) “성령으로만 <주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성령님만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확신케 하고 소망할 수 있게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만이 ‘친히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고,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받고 영광을 누릴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롬. 8:16-17).

바라기는 주의 영, 성령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몸의 행실을 날마다 죽여 나감으로 육신에 속한 죄와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제 개인적으로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 불리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공부를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유익의 하나를 들라면 그것은 ‘우리 거듭난 크리스챤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 여러 번의 설교를 통해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 또한 도전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것인데, ‘만약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면, 이런 나의 영적 신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이해한 만큼 삶으로 누려 나갈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깨닫고 올바르게 누려 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뿐만 아니라, 여러 신학자들과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은 로마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그 어떤 말씀 보다도 더욱 이런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존과 특권’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충만한 계시와 탁월한 가르침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택하심을 입은 성도 여러분 모두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이 놀라운 영적 권세가 무엇인지를 깨닫아 풍성하게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몇 주전에 저는 우리 성도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의 지극히 큰 것에 관해 <롬. 8장 17-18절>을 통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라는 중심질문에 답하면서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뜻’ (엡. 1:4-5)을 이루고자 함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죄 용서하심>이라고 했고, 그것이 끝이 아니고 둘째,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렇다면, 무엇이 풍성한 삶인가?’를 또한 살펴보았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7-18)라고 사도는 성도에게 주어질 영광을 <17-18절>에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아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게 되는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를 그 어느 말씀보다도 탁월하고 영광스럽게 밝혀주는 말씀이 바로 <로마서 8장>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롬. 8장>의 주제말씀은 <1-2절>인데 사도는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복된 존재임을 다음과 같이 놀랍게 밝힙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라고. 이처럼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존재인 성도 (그리스도인)가 누리게 될 권세, 곧 ‘이 땅에서의 풍성한 삶과 미래에 주어질 영광이 바로 <롬. 8장>의 주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가 하나님의 영이시요,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인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본문말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v.13)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성도가 누리게 되는 특권과 은혜의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말씀에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사도의 성도를 향한 도전은 한마디로 한다면, 그것은 “크리스챤의 성화 (sanctification)”에 대해 도전한 말씀임을 우리는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먼저 <9절>에서 ‘누가 그리스도인이 아닌가?’하는 중요한 영적 기준을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자는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하시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v.9)라고. 여기서 사도는 이미 제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교차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지금 사도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님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본질상 하나이시며, 더 나아가 그 사역 (=하시는 일)에 있어서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도 안에서 역사하여 <놀라운 구원의 역사와 더 나아가 성도의 성화를 계속해서 행해 나가심>을 <9절>말씀은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은 본질상 동일하신 한 하나님이시요, 성령은 성도 안에서 역사하여 ‘온전한 인격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심을 <9절>말씀에서 사도는 강하게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12절>에서 이점을 사도는 더욱 분명히 밝힙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될 때,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동일하신 성령님의 권능으로 인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v.11b)고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신다”는 것이 단순히 ‘죽음에서 건져낸다’거나 ‘죄를 용서해 준다’는 의미 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에게 임하여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우리 크리스챤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육신에 속한 소욕’ (the flesh desire)과 ‘세상의 헛된 가르침’과 ‘공중 권세 잡은 사단’과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이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다음절 <12절>에서 사도가 “그러므로” 라고 그의 논리를 전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 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v.12)라고. 무슨 말입니까? 우리 거듭난 성도는 더 이상 죄에게 지는 그런 나약하고 불행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챤이 죄에게 진다’는 뜻이 사도가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린데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의 소욕에 져서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는 우리 성도들이 육신대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도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크리스챤은 의롭고 구원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시에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의 생명을 입고 거듭난 성도들 만이 죄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위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롬. 8장>의 주제인 ‘그리스도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v.1-2). 반대로 말한다면, 세상의 구원받지 못한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그 사람에게 만이 이런 막강한 ‘죄와 사망’의 힘에서 해방되는 은혜 (특권/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확히 오늘 본문에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v.13)라는 뜻임을 믿습니다. 제가 방금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에게만 죄를 이길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고 했는데, 이것은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분이 주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신분에 걸맞게 주님의 약속을 따라 도우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겨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약속을 삶 속에 적용하고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 성령의 능력으로써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선한 율법을 새겨 주심으로, 육신에 속한 정욕을 죽이고 주께서 약속하신 승리의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성화’인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영 성령을 통하여 주신 능력으로, 날마다 육신과 싸워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점점 더 우리 모든 성도의 푯대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무엇이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뜻인지?” (v.13)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것은

첫째, “성령으로만 <죄의 실체를 깨닫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불행한 크리스챤이 있는가?’를 여러분에게 질문했고, 저는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강조하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런 자를 사도 바울은 일컬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첫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3)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이와 같은 ‘육신에 속한 자’ (the carnal man) ((롬. 7:14))로 불행하게 전락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하는 점을 우리는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통하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성찰하고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성도는 <예수 믿고 구원받음으로 ‘영으로는 즉시 사망에서 영생으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육체로는 여전히 죄가 거하는 몸을 입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성도는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영으로는 영생을 소유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사도 흠모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가 거하는 ‘썩어질 육체’ (갈. 6:8)를 입고 살아가는 이율배반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죄가 없는 천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실수하고 죄를 저지르는 허물 많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우리 존재’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예수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존재가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과거 청년시절 착각했듯이, 오늘날도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그 이유에는 자신의 육체가운데 거하는 죄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거듭난 성도는 이미 영으로는 영생을 소유한 영광된 존재가 되었지만, 육으로는 여전히 우리 몸에 거하는 죄와 싸워 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지 못한 사실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그 첫 출발은 먼저 ‘내 육체/몸 안에 거하는 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바라보고 깨닫고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깊은 나의 내면을 비춰 주실 때, 우리는 다윗과 같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3,7)라고 말입니다.

둘째, “성령으로만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청교도의 대표적인 신학자의 한사람인 영국의 ‘존 오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존 오웬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죄 죽이기” (The Mortification of Sin)에서 우리 크리스챤이 어떻게 실천적 (실제적)으로 죄와 싸워 이길수 있을 것인지를 그의 깊은 성경적 지식과 오랫동안 자신의 영성훈련을 토대로 하여 탁월하게 제시합니다. 그가 이 책에서 중심으로 삼고 있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롬. 8:13>말씀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 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v.13)라고.

오웬은 ‘죄를 죽인다’는 의미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합니다. 그것은 1) ‘죄의 성향을 약화시킨다’(약. 4:7), 2) ‘죄와 맞서 싸운다’ (엡. 6:12), 3) ‘죄를 죽이는데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빌. 3:13-14)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육신의 죄를 다스리고 성화의 삶을 실천해 온 대표적인 크리스챤 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청교도인들’의 영적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존 오웬은 ‘오직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각자가 자신의 육신에 속한 행실, 곧 죄를 죽여 나갈 수 있다’고 우리를 도전하고 격려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 곧 ‘죄를 죽이는 것’이 크리스챤으로서 ‘성화의 삶’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으로만 <주님의 약속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세번째는 성령님만이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확신하고 소망할 수 있게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세히 살펴본 것처럼 사도는 성령께서 우리 성도 안에 역사하셔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부정적인 관점>으로서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죄를 범하지 않는 것, 즉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주의 약속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14-18절>에서 묘사한 복되고 영광스러운 성도의 삶을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깨닫고 취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v. 16)라는 것이요,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v. 17)고 사도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영광된 삶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될 때, 놀라운 우리의 영적 신분과 주의 약속을 확신하고 기쁘게 누려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실로 우리 성도가 ‘의롭다’고 불리어지는 그 구원의 첫 시작에서부터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날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가는 성화’로 이끄시고, 마지막 주님을 만나는 날 주와 함께 누릴 영원한 ‘영화’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사역을 쉬지 않고 우리 안에서 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엡. 1:6)는 이 축복의 간구는 정확히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질 역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첫 구원의 순간부터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시의 심판의 날까지 우리 속에서 약속을 성취하시는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함으로 죄 씻음 받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성도 여러분 중에서 단 한사람도 단지 ‘거듭난 것’ 곧 ‘영적 출생’에만 만족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주의 영, 성령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몸의 행실을 날마다 죽여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육신에 속한 죄와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워 승리하심으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누려 나가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의 장성한 성품으로 자라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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