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31, 2024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함으로” (Did Not Recognize The Words Of The Prophets)

Preacher:
Passage: 사도행전 (Acts) 13:27~29
Service Type: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함으로”

(Did Not Recognize The Words Of The Prophets)

3-31-24

본문말씀: 사도행전 (Acts) 13:27~29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설교 요약]

우리 주께서 오늘 새벽에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저는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사도행전>의 <13장>말씀을 통해 우리 주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영광된 부활의 의미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3장>의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1차전도여행’ 당시 <바시리아 안디옥>에서 유대인회당에서 설교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 설교는 <16~41절>에 이르는데, 그 전반부 (16~22절)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말씀’ (구약)을 그리고 후반부 (23~41절)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증거’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의롭게 (구원받게) 됨을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바울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의 핵심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목 박아 죽게 했는지?’를 '그들이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v. 27). 사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머리를 부수고 승리하실 것 (창. 3:15), 다윗의 후손 가운데 나실 것 (사. 11:1/시편 89:3~4), 그리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고 (사. 7:14) 그 태어나실 장소는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 (미 5:2)라는 것, 이 외에도 구약성경에는 300개가 넘는 말씀에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둘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 이 땅에 오셨지만, 문제는 그의 백성들이 주를 영접치 않고 거부하고, 십자가에 목박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들의 거부까지도 성경에 예언되 있고,  주님은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십자가에서 홀로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에 이미 주님의 버림 받으심 (시편 22,69편/이사야 53장), 나무 위에 달려심 (신명기 21장) 그리고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다시 썩음을 당치 않으심 (시편 16:10)등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셋째, “부활하신 예수를 믿을 때 구원받는 것”입니다: 사도는 주의 복음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v. 38~39). 바로 역사의 주인공 되시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나 썩음을 당치 않고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날마다 육신에 속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의 생명에 속한 ‘새사람’이 되어 승리하고 풍성한 열매 맺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주께서 오늘 새벽에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지 3일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권능의 손으로 그를 다시 살리신 기쁘고 영광스런 부활절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우리 기독교에는 여러 주요한 명절이 있는데, 그 중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크리스마스도 있습니다. 이렇게 주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도 우리 성도가 당연히 기뻐하고 기념할 날이겠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기념하는 ‘주님의 부활하신 날’은 성탄절보다도 더욱 더 우리 성도가 기뻐하고 감격으로 기념해야 할 기독교최고의 날임을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루어 주셨기에, 그리하여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의 구원이 확정되었음을 세상 가운데 선포한 날이기에 오늘 부활절은 참으로 복되고 영광스런 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복된 주님의 부활절에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사도행전 13장>에서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바시리아 안디옥’에 가서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왜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신지?’ ‘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는지?’ 그리고 ‘왜 이것이 도리어 (역설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되었는지?’하는 것을 확인해 나가겠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영광 가운데 다시 사신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고, 성도 여러분과 함께 부활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붙듦으로 언제나 이 주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제 저는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그의 <1차 선교여행>의 한 지역이었던 <바시리아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서 행한 복음증거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의 설교 말씀은 (이미 그가 여러곳에서 말씀 증거를 했음은 분명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첫번째 설교 메세지인데, 오늘 말씀을 포함한 <사도행전 13:16~41>을 우리가 함께 살펴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아가고자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구약의 모세와 여러 선지자의 글에 오시리라 예언한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그 수많은 구약의 말씀을 유대인들이 믿는다고 하고, 심지어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언급한 것처럼 ‘그 말씀을 암송’까지 하면서도 그들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모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도 그 원인을 확인해 나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바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설교한 본문인 <행. 13장 16~41절>을 큰 그림에서 볼 때 두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부분은 <16~22절> 까지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그의 자손을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살이 하는 가운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후에, 그의 강한 손으로 출애굽시키시고, 광야에서 40년동안 이 민족의 악한 소행을 참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세우셔서 그의 씨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 곧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그 요지를 말한다면,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부분은 <23~41절>로서 그 요지는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조금 풀어 설명하면, 먼저 ‘주의 길을 예비한 침례자 요한의 사역’이 먼저 언급되고 (24~25절),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 오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약속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고발 (26~29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그 의미 (예언의 성취)’에 대해 바울은 위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30~41절).

사실 저는 지금까지 ‘부활절 말씀’으로서 주로 ‘4복음서’ 중에서 택일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 저는 계속되는 사도행전의 진도와도 맞는 13장 말씀이 어떤 면에서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의미를 보다 큰 그림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에 오늘 본문을 부활절 메시지로 정한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핵심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 곧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목 박아 죽게 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선지자들의 말, 다시 말해 특별히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v. 27~28) 라고. 실제로 우리가 정통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을 보면,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4살부터 13살때까지 모세오경 말씀을 다 외우게 하는 것을 부모의 사명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유태인들이 성경책 전체를 외우는 <성경암송>방법을 ‘테필린’이라고 하는데, 세상의 여러 석학들은 유대인들의 각 분야에서 뛰어난 결과물들을 내는 것이 어릴 때에서부터 성경을 암송한 두뇌계발에 기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성경암송을 매우 중요한 그들 종교의 전수와 훌륭한 유대종교인이 되는 선제조건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통 유대교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읽을 뿐 아니라, 아예 암송하기까지 하는데 문제는 그 말씀의 의미를 이들이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구약의 말씀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에 기록된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번째로 이와 같이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라고. 하나님의 메시아를 통해 사단의 머리를 부수고 승리케 하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는 이 메시아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또한 이사야는 좀더 구체적으로 <사. 11:1>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예언했고, <시편 89:3~4>에서 ‘다윗의 자손을 통해 그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을 통해 바울이 <22~23절>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의 후손에서 구주를 세우실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또한 <민수기 24:17>에서 메시아는 야곱에게서, 그리고 <창세기 49:10>에서는 그가 유다의 혈통으로부터 나올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미가’를 통해 그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미. 5:2). 이것을 오늘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구약에서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무려 300개가 넘는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오실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기억 하시겠지만, 저는 지난 <고난주간>동안 여러분과 ‘교회단톡’을 통해 소감을 나누며 함께 주님의 고난을 묵상으로 동참코자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말씀에서 한가지 제가 새삼 놀라던 것은 <마가복음 14장>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대제사장에게 데려가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대제사장은 주님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막. 14:61)라고 질문했고, 주님은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막. 14:62)고 답하셨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기 옷을 찢으며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막. 14:63~64)라고 조금의 주저함이나 어떤 다른 확인없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판결하고 사형에 처하고자 모인 공회원들과 공모했던 것입니다. 제가 다시금 놀란 것은 이렇게 예수께서 자신이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선언하는 순간,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하고 사형의 형벌을 판결했다는 것입니다. 그중 단한명도 “정말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한번 확인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모두 하나가 되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서 거짓말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속인 사형에 해당하는 역적 죄인’이라고 곧바로 정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으로 고착화되어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것인가를 단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장면인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과 안식일마다 그들이 외웠던 선지자들의 주님에 대한 예언을 알지 못함으로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v. 28)고 소리쳐 요구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우리가 다시 한번 놀라고 감탄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유대인들의 영적 어리석음과 잘못된 예수님에 대한 인식과 주님을 십자가에 목 박은 죄악까지도 또한 하나님은 이미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묘사하듯이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v. 29)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한 예언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예수님의 죄 없이 고난 받으심’입니다 (v.28) (시편22, 69장). 둘째) ‘나무 위에 달려 저주 (정죄) 받으심’ 입니다 (v. 27) (신. 21:22~23/ 요. 3:14~15). 셋째)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 썩음을 당치 않으심’ 입니다 (시편 16편)

중요한 사실은 유대인들이 목이 곧고 영적 무지함으로 예수님을 오해하고 그분을 정죄하여 죽였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비밀>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유대인의 잘못된 선택과 죄악조차도 하나님은 조금도 방해받거나 난관에 처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것조차도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으로 기록하심으로 (어떤 말씀???) 그 어떤 인간들의 행위에 방해받지 않으시고 이 모든 세상을 주관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역사의 중심 (주인공/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믿을 때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오늘 한편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메시지를 놀랍게 선언하면서 이렇게 결론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v. 38~39)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주시겠다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한 메시아는 바로 성경대로 다윗의 씨에서 나시고, 성경대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나셨으며, 성경대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모든 저주를 대신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성경대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v.35)는 예언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그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에 힘입어 죄 용서함을 얻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된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부활절 말씀을 마무리하며,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사렛 예수님은 과연 누군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 한 신학자의 말을 빌려서 나누기 원합니다. 첫째, <예수그리스도는 역사의 ‘정점/주인공’>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으로 역사는 ‘그의 전’ (BC)과 ‘그의 후’ (AD)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곧 ‘History’는 여러분이 아시는데로 ‘His story’ 곧 ‘그분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둘째,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우리가 대략 살펴본데로,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구약성경에서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이 정확하게 나사렛 예수님을 가르키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예수그리스도만이 그를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성장배경과 능력, 그리고 그 어떤 조건과 형편에 관계없이, 지난 날의 죄된 삶에 관계없이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구원자이심을 믿고 내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의 부활이 이토록 영광스럽고, 우리 크리스챤 모두에게 산소망이 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아닌 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놓여 있는 존재, 다시 말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고전. 13장>을 쓰면서 주장하는 부활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 곧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신 사건>을 통해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살리심을 세상만방에 영광스럽게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활사건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함을 받고,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자신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자신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바라기는 주님의 부활사건이 일년에 한번 있는 연중행사에 그치지 않고, 주와 함께 그의 영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나의 자아와 육신의 소욕과 세상의 헛된 가르침을 십자가에 목 박음으로 주와 함께 다시 살아나 많은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